안내문 전체를 검수할 수는 없습니다. 틀렸을 때 현장에서 다툼이 되는 문장만 확인합니다.

외국인 손님이 늘면서 안내문을 영어로, 일본어로, 중국어로 만들어야 할 일이 생깁니다. AI에 넣으면 몇 초 만에 나옵니다. 문장도 매끄럽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붙여도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읽을 줄 모르는 언어라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같은 안내문 안에서 무게가 다른 문장

안내문 한 장에는 성격이 다른 문장이 섞여 있습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어디 적혀 있는지, 쓰레기를 어디에 두는지, 근처에 편의점이 있는지. 이런 문장은 표현이 조금 어색해도 손님이 알아봅니다. 틀려도 손님이 한 번 더 묻는 정도로 끝납니다.

금액과 조건이 들어간 문장은 다릅니다. 추가 인원 요금, 연박 할인, 조기 체크인 가능 여부, 취소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환불 규정. 손님이 읽은 그 문장이 그대로 약속이 됩니다. 현장에서 숙소가 다른 설명을 하면 손님에게는 말이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검수할 범위는 여기까지로 좁혀집니다.

여지를 둔 표현이 단정으로 바뀌는 자리

한국어 안내문에는 여지를 두는 표현이 많습니다. "상황에 따라 가능합니다", "미리 문의해 주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객실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번역 과정에서 자주 정리됩니다. 특히 짧고 자연스럽게 다듬어 달라고 하면 여지를 두던 부분이 함께 없어집니다. 남는 문장은 된다거나 안 된다는 하나의 뜻으로 읽힙니다.

조기 체크인이 그렇습니다. 원래 문장은 객실 정비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는데, 번역문이 조건 없이 가능하다고 읽히면 손님은 그 안내를 보고 그날 일정을 잡습니다. 도착했을 때 안 된다고 하면 숙소가 말을 바꾼 상황이 됩니다.

금액도 같습니다. 성수기에 따로 적용되는 요금이 있는데 번역문에 그 조건이 빠지면, 손님은 적혀 있던 금액이 그날 금액이라고 알고 옵니다.

번역에 넘기지 않고 그대로 두는 항목

여기서 번역을 거치지 않는 편이 나은 항목이 있습니다.

숫자와 통화 단위입니다. 금액은 원화 표기를 그대로 두고, 인원과 박수도 숫자로 남깁니다.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숫자가 함께 다듬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고유명사도 그대로 둡니다. 숙소 이름, 지하철역 이름, 동네 이름이 뜻으로 옮겨지면 손님이 길을 찾지 못합니다. 역 이름을 뜻대로 옮긴 안내문을 들고 택시를 타면 기사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한글 표기와 로마자 표기를 함께 적어 두면 손님이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주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어로 풀어 쓴 주소보다 한국어 주소를 그대로 적어 두면 현장에서 그대로 쓰입니다.

그 언어를 몰라도 되는 확인, 되옮기기

표시한 문장을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나온 외국어 문장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 달라고 하고, 처음 쓴 한국어와 뜻이 같은지 봅니다.

여지를 두던 표현이 없어졌는지, 숫자가 달라졌는지, 조건이 빠졌는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 언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두 한국어 문장만 대조하면 됩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번역한 그 대화에서 바로 되옮겨 달라고 하면 앞에 있던 원문을 보고 그대로 돌려줍니다. 틀린 부분이 있어도 원래 문장으로 복원됩니다. 새 대화를 열고, 원문을 보여 주지 않은 채 외국어 문장만 전달해 한국어로 옮기게 합니다. 그래야 손님이 실제로 읽는 뜻이 나옵니다. 같은 자료라도 무엇을 어떻게 요청하느냐에 따라 돌아오는 답이 달라지는 문제는 AI에게 묻는 방법에서도 다루었습니다.

안내문 한 장에서 확인할 서너 문장

지금 쓰는 안내문을 꺼내 금액과 조건, 취소가 들어간 문장에 표시해 봅니다. 대개 서너 문장입니다.

그 문장만 되옮겨 확인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씁니다. 처음 만들 때 한 번 하면 되고, 요금이나 규정을 바꿀 때 그 문장만 다시 확인합니다.

AI가 만든 결과를 어디까지 믿을지는 도구를 바꾼다고 정해지지 않습니다. AI가 제안한 가격, 믿어도 될까에서 다룬 것처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보이는 만큼 범위가 정해집니다.

안내문에서 금액과 조건이 들어간 문장이 몇 개인지 확인해 보면, 오늘 검수할 분량이 그 자리에서 나옵니다.